
지난 6월 중순, 서울에서 열린 한 외교안보 학술행사에서는 새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기조와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 개편 방향이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지금까지 한국의 외교안보정책이 ‘국면별 대응’ 중심이었다면, 새 정부는 ‘기조 중심의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즉, 위기 대응과 상황별 처방에서 벗어나, 구조적인 설계와 운영체계 개편을 통해 ‘전략국가’를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외교안보 시스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기존의 대통령 중심, 청와대 중심 시스템에서 각 부처가 역할을 분담하는 ‘네트워크형’ 정책운영 체계로 바뀐다.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총괄 조정 역할로 재정비되며, 외교부와 국방부, 통일부는 각각의 기능을 분명히 하되 상호 연계성을 강화한다. 이것이 곧 ‘기조 중심 시스템’이다.
둘째, 대북·통일 정책은 '흡수통일'이나 '체제경쟁'을 넘어 실용주의 기반의 '공존과 변화관리' 기조로 전환된다. 북한 체제의 붕괴나 급변만을 전제하지 않고, 장기적인 변화 관리와 국익 중심 접근을 병행하겠다는 구상이다. 남북 접경지역의 위기관리는 물론, 북한 인권 문제와 주민 접근을 위한 ‘확장 억제’의 틀도 포괄적으로 재정비된다.
셋째, 외교안보 전략의 지역 및 글로벌 연계 강화다.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국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동맹, 일본과의 협력, 중국과의 전략적 균형을 동시에 꾀하려는 방향성이 강조된다. 특히 아세안, 유럽, 중동 등 다변화된 협력 파트너를 통한 외교 다각화 전략이 눈에 띈다.
이 같은 개편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 ‘국가운영 아키텍처’의 변화다. 외교안보는 더 이상 전문가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부처 간 협업과 정보 공유, 그리고 국민과의 공감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공동의 과제임을 새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단기적 효율보다 중장기 전략에 초점을 맞추고, 이벤트 중심이 아닌 시스템 중심으로 외교안보를 설계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한국 외교안보의 체질 개선, 지금이 기회다. 새 정부의 비전이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실행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