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의 韓日 실효 관세율, 트럼프 이전보다 15%P나 올라
- 플라자 합의에서 보듯 근린궁핍화정책은 美의 전매특허

관세는 외국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통상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만일 국산 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한 외국산 제품이 있다면 비슷한 품질을 전제로 외국산 제품이 훨씬 잘 팔리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은 폐업으로 내몰릴 수 있고, 관련 산업은 물론 한 나라 경제가 외국산 제품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자국 산업 보호에 무게를 둔 나라는 수입품에 큰 폭의 세금을 매겨 자국 소비자의 구매 포기를 유도하거나 국내 기업의 이윤 손실을 보충한다.
이는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의 후생(厚生)을 극대화하는 최적관세(最適關稅)와도 관련이 깊다. 무역 상대국에게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무역 상대국은 가격을 낮춰서라도 제품을 팔려고 하기 때문에 수입품 가격이 오르지 않고 오히려 자국의 무역 조건이 유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국에 최적관세가 성립하는 상황에서는 무역 상대국의 수출량 감소로 인한 생산자 잉여나 실업문제가 뒤따르게 된다. 고율 관세는 대표적 '근린궁핍화정책'이기 때문이다.
근린궁핍화정책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경제를 희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관세 인상, 수입 할당제 등의 무역정책은 물론 환율 조작을 통한 자국의 통화가치 하락 유도 등 통화정책에서도 기인한다. 아울러 근린궁핍화정책은 초강대국, 특히 미국의 ‘전매특허’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플라자 합의가 대표적이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미국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등 선진 5개국의 경제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여 미국 달러를 제외한 주요 통화의 가치를 올리기로 한 합의다. 합의는 30분 만에 간단히 끝났지만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
명분은 세계 경제의 불균형 해소였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만년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일본과 서독에 환율 절상이란 ‘올가미’를 씌운 것이나 다름없다. 강제적인 환율 절상으로 미국에 수입되는 이들 나라 제품의 가격이 높아짐과 동시에 무역수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또한 플라자 합의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초래한 단초가 된다.
무역적자 개선을 명분으로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역시 같은 맥락이다. 특히 미국의 무역 상대국 가운데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제외하면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상호관세로 인한 부담이 가장 큰 상황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최근 공개한 ‘미국의 실효 관세율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한국에 대한 실효 관세율은 15.0%로 추산되고 있다. 실효 관세율은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관세의 비중을 말한다. 미국과 교역량이 많은 상위 15개국을 기준으로 할 경우 한국의 실효 관세율은 중국 41.4%, 일본 16.4% 다음으로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시행되기 전인 2024년에는 미국의 실효 관세율이 일본은 1.5%, 한국은 0.2%에 불과했다. 올해 실효 관세율을 2024년과 비교하면 일본은 14.9%포인트, 한국은 14.8%포인트 늘어났다. 이 같은 증가율 역시 중국의 30.7%포인트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대외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경제ㆍ산업ㆍ통상 전반의 명운을 걸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나선 상태인데, 특히 이목이 쏠리는 부분은 비관세 장벽이다. 아시아 국가 중 미국과 가장 먼저 관세 협상을 타결한 베트남과 달리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서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사실상 '0'에 수렴한다. 관세 인하 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를 의식한 듯 미국도 그동안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지적한 비관세 장벽 완화를 지속 요구해 왔다.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허용과 쌀 수입 확대, 그리고 안정성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유전자변형작물(LMO) 수입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비관세 장벽 이슈는 국내에서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뜨거운 감자’다. 특히 농산물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농민들의 반발이 거센 데다 ‘먹거리 주권’과 직결된 민감하고 휘발성 높은 사안인 만큼 집권 초반 새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1933년 미국의 31대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가 최고 400%에 달하는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관세전쟁에 나서자 세계 교역량은 크게 줄며 대공황을 맞았다. 이는 결국 세계 2차대전이라는 파멸적 결과로 이어졌다.
상호관세의 사전적 의미는 두 나라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미국 무역적자에 대한 보복관세로 볼 수 있다. 이는 후버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악수(惡手)이자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국을 ‘궁지’로 몰아넣는 근린궁핍화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방위 관세 압박으로 많은 나라가 최근 미국 중심의 국제무역 질서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다.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해 동맹국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중국을 상대할 역량을 약화시키는 하책(下策)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