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 협상 실패 땐 한국의 경제와 산업구조 근간 흔들려
- 안미경중은 철 지난 레퍼토리, 전략 재검토 필요성 대두

 

두 번째 임기를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제와 외교안보를 결합하는 등 광인 전략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연합 
두 번째 임기를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제와 외교안보를 결합하는 등 광인 전략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연합 

아브라함 협정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이 체결한 외교관계 정상화 협정을 말한다. 명칭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공유하는 선지자 아브라함에서 따왔다. 지난 2020년 9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처음 참여했다. 수단과 모로코도 같은 해 동참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주요 외교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굴곡도 있었다.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2023년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아브라함 협정은 추진력을 상실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외교 정상화 논의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중단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브라함 협정에 다시 동력이 생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에 대한 제재를 21년 만에 공식 해제하면서 시리아의 참여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통해 ‘중동 평화의 설계자’로 입지를 강화하고, 노벨 평화상까지 노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에는 ‘방아쇠’가 존재한다. 즉 지난 40년 동안 미국에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해 왔던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미국에 굴복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정밀타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이란 전쟁은 미국의 ‘심야의 망치’(Midnight Hammer) 작전으로 조기 종결됐다. 심야의 망치 작전은 B-2 스텔스 폭격기 7대와 14발의 초대형 벙커버스터 GBU-57을 동원한 이란 공습을 말한다. 이스라엘의 정밀타격은 가공할 수준이었고, 미국이 실전에 처음 사용한 벙커버스터는 충격과 공포를 불러왔다.

이란은 ‘약속 대련’ 형식의 반격을 끝으로 과거와 다른 무기력한 모습 속에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이는 ‘힘을 통한 평화’를 실제 증명한 사례로 미국 보수 진영에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힘을 통한 평화를 주창하며 구(舊)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한 데 필적하는 성과로 받아들이는 기류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공 방정식은 미치광이 전략, 즉 광인(狂人) 전략에 기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대에게 자신을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인식시켜 두려움을 갖게 하고, 이를 통해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는 것이 주요 골자다.

광인 전략의 핵심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그동안 중국, 이란, 북한 등이 미국을 상대할 땐 자국처럼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한 일당독재나 신정체제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국가란 약점을 교묘히 이용해 왔다. 미국은 원칙적으로 전쟁 행위에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며, 여론도 살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 없이 이란 공격을 단행했고, 신무기를 실험했다. 이란에 2주의 시한을 주더니 느닷없이 이보다 앞서 폭격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란의 주요 인물들을 표적 제거한 뒤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에 대해 “은신처의 위치를 안다”며 협박도 했다. 테러리스트도 두려워할 광인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을 축으로 한 경제 분야에서도 광인 전략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의 행보로 무역 상대국들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 경제 정책의 이데올로기는 제조업 되살리기로 대변되는 생산경제 복원, 무역적자 줄이기, 미국 일자리 되찾기 등 '미국 우선주의'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무역은 상호이익이 아닌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이며, 이 같은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관세 무기화' 카드를 들고 나선 것이다.

관세 무기화도 용도가 다양하다. 멕시코에 이민 문제로 관세 압박을 가하는 도구적 관세,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며 사용하는 지정학적 관세, 그리고 무역흑자를 내는 상대국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상호 관세 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외교안보 문제를 연결고리로 경제적 성과를 얻어내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광인 전략도 갈수록 능숙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이를 ‘독트린’ 반열에 올리고 있는데, 한국도 그 칼끝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재 한미 양국의 현안은 역대 어느 정부와 비교해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당장 발등의 불은 관세 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8월 1일부터 모든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품목별 관세는 별도다. 한국 정부는 해법을 찾을 시간을 벌었다는 입장이지만 협상에 실패할 경우 한국의 경제와 산업구조는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은 비관세장벽 해소의 일환으로 미국산 소고기와 쌀의 수입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의 경우 이명박 정부 시절 광우병 시위의 트라우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산 쌀 역시 식량안보 관점이나 농민들의 반대를 감안하면 진퇴양난의 난제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이 같은 경제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을 '무임승차'에 비유하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해 왔다. 여기에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 재배치, 심지어 양안전쟁 등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군 파병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실용주의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은 철 지난 ‘래퍼토리’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시작과 동시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것으로 전략 재검토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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