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전쟁 발발 75주년이다. 우리가 전쟁을 잊더라도 전쟁은 우리를 잊지 않는다. 전쟁의 위험을 잊고 있는 국가에게 전쟁은 도둑처럼 다가온다. 6.25 전쟁이 그러했다. 준비없이 맞이한 전쟁의 결과는 처참했다. 당시 국군은 북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북한은 무려 10개 보병사단(40개 연대)에 약 20만 명의 병력을 보유했다. 특히 중공에서 조선인 병력을, 소련에서 T-34를 포함한 전차 242대를 넘겨받아 침공의 주축으로 썼다. 무엇보다 소련군사고문단은 기동전 전술을 전수하면서 침공의 세부까지 가다듬었다.
이에 비하여 국군은 8개 사단 규모라지만 22개 연대로 병력은 10만 명에도 이르지 못했다. 야포화력으로 비교하면 곡사포는 북한에 비해 8배 이상, 박격포도 2배 이상 적었다. 이미 북한은 1949년 이후 38선 접경에서 다양한 도발을 해오면서 전쟁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지만, 당시 국방장관은 북진통일하자고 목소리만 높이며 실제 전쟁의 준비는 게을리 했었다.
질적 우세 vs 핵 우세
핵을 제외한다면 북한군은 볼 것이 없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어느 정도 타당하다. 우리는 눈부신 경제성장과 반도체 등 선진국형 첨단산업을 기반으로 첨단 재래전력에서 명백한 우위에 있다. 우리의 전략기조는 첨단전력의 질적 우위를 통해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병영국가인 북한을 상대로 애초에 정량적 우위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일례로 지상군 병력은 북한의 40% 수준에 불과하고, 지상전의 주력인 전차는 북한의 절반 수준인 2천여 대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수준의 인구급감으로 우리 군의 규모는 2022년경에 50만명으로 줄어들었고, 2040년경에는 35만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질적 우세로 이를 극복한다. 3세대 이상급 전차를 약 80% 보유하여, 4천여 대 중에 3세대급이 10%도 안되는 북한을 압도한다. 여기에 1천 문이 넘는 K9 자주포의 정밀화력과 500대를 넘는 헬기전력으로 입체적인 기동과 화력을 더하면 북한은 양적 우세에도 감당하기 어렵다. 더욱이 첨단기술과 이를 뒷받침할 엄청난 예산을 필요로 하는 해군력과 공군력에서 대한민국의 우위는 압도적이다.
이런 격차를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북한이다. 그래서 한미의 첨단전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꺼내든 것이 바로 핵이다. 북한은 2021년 8차 당대회 이후 핵사용을 강조한다. 술핵 중심으로 핵전력을 구성하고, 극초음속 미사일, 고체연료 ICBM, 핵어뢰, 미사일 잠수함 등 전략핵무기도 선보였다.
핵 위협을 현실화하려면 북한은 언제든 핵을 쓸만큼 미쳤다는 걸 과시해야만 했다. 김정은은 2022년 핵무력정책법에서 재래전쟁을 포함한 모든 상황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자신이 얼마나 미치광이인지 보여주었다.
다시 재래전력을 강화하는 북한
그럼에도 핵은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다. 러우전쟁에서 푸틴은 핵 위협으로 미국과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침공을 막아왔다. 그러나 2024년 8월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시 러시아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했고, 쿠르스크 탈환을 위하여 러시아는 북한군을 불러들여야 했다. 러시아의 핵그림자 전략을 추종하던 북한에게 큰 교훈이 되었을 사건이었다.
사실 김정은은 핵전력만 강화해온 것은 아니었다. 집권 후 전차와 자주포 등 주력무기를 현대화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계속됐다. 다만 한정된 재원 하에서 핵과 재래전력의 동시 무장은 불가능하기에 핵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8차 당대회에 따른 핵전력화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서 북한은 이제 첨단재래전력으로 점차 눈을 돌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찰능력이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과 전략정찰용 무인기를 확보하겠다는 복안을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은 2023년 11월 ‘천리마-1’ 우주로켓으로 ‘만리경-1’ 정찰위성을 발사에 성공했고, ‘새별-4’ 고고도 정찰기와 ‘새별-9’ 공격무인기를 개발해냈다. 그러나 김정은이 가진 야심만큼 북한의 기술력은 따라오지 못했고 자원은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2024년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북한은 드론과 AI가 중심이 된 러우전쟁에 투입되어 피의 교훈을 배우고 있다. 또한 참전 대가로 금전적 이익은 물론 새로운 장비와 군사기술을 획득하고 있다. 북한군의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의 선택
우리의 선택은 명백하다. 우선 한미동맹을 철통처럼 강화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등장으로 다소 양국간의 이견이 있지만, 평시 미국의 핵 확장억제와 전시 전력증원이 없으면 한반도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유연성이 문제되는데, 대중견제에 집중하는 동맹국인 미국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려울 때 도와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북핵을 억제하는 3축체계의 강화는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재래식 억제를 주도하라는 미국의 요청에 대한 대응이다. 전략적인 정보감시정찰능력으로 북한의 의도를 스스로 파악하고, 병력의 양적 열세를 AI와 드론에 기반한 미래전력으로 극복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전력강화, 그리고 한반도 석권의도를 깔보고 국방대비태세를 약화시켜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