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중 패권 경쟁 구조 속에서 한국,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것은 매우 위험
- 핵확장 억제력은 심리적 안정에 불과 ... 한국, 자체 핵우산 각오 가져야 
- 김정은, 더 이상 트럼프와 회담 절박하지 않다…2019년과 달라진 구조
- 누가 당선돼도 대북지원 쉽지 않아…해답은 서울 아닌 워싱턴에 있어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가 지난 5월 20일 국민대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샌드타임즈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가 지난 5월 20일 국민대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샌드타임즈 

한국이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전략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핵우산과 안보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드레이 란코프(사진) 국민대 교수는 지난 20일 국민대에서 가진 샌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의 중국 억제 정책에 일정 정도 참여하지 않으면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할 정치적 명분도 약해질 수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란코프 교수는 “중국을 최대의 전략적 도전국으로 규정하는 것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의 일치된 인식이며 미국의 동맹국이 그 대열에 참여하지 않으면 북한처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 목표이며 이를 공유하지 않는 동맹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안보 커버리지도 선택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는 한국이 미국의 지시에 따라 중국을 공격하라는 얘기가 아니"라고 했다.

란코프 교수는 "그렇다고 무조건 중국과 친하게 지내면 된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 셰셰(谢谢 감사합니다)’식 친중 정치는 좋아 보이지만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셰셰 외교가 단기적으로는 실리를 추구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전략적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중국과 대만 사이의 충돌 가능성,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구조 속에서 한국이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미국과 손을 잡든 중립을 택하든 어느 쪽도 정치적 비용이 따른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중 관계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확장 억제력은 심리적 안정에 불과 ... 한국, 자체 핵우산 직접 갖추겠다는 각오 가져야 

그는 이처럼 격변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만을 믿기보다는 독자적인 핵억제력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 정세 변화와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도 핵무장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란코프 교수는 "확장억제력은 심리적인 안정에 불과하며, 실제 사용 여부는 미국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며 “한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는 핵우산을 믿기보다 자국의 핵우산을 직접 갖추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괌이나 사이판, 핵잠수함 등을 통해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은 있지만, 유사시 워싱턴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핵전쟁을 감수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며 “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오히려 한반도는 더 안전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북한은 이미 미국 본토를 타격 가능한 ICBM을 시험했고, 머지않아 실전 배치가 예상된다”며 “1954년 한미동맹 당시와는 전략적 조건이 달라졌다. 핵우산 제공에 대한 미국의 결정은 점점 더 정치적으로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의 핵개발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만만찮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승인, 중국의 반발, 북한의 군사적 대응이 거론된다고 했다. 

란코프 교수는 “핵 개발 관련 기술·자본·인재는 한국에 모두 있지만 핵물질을 확보하려면 미국의 허락이 필요하다”며 “한국의 자체 핵개발에 대해 현재 미국 내 기류는 변화 조짐을 보이지만 여전히 한국의 핵을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중국은 이를 동아시아 핵무기 확산의 도화선으로 간주하고 강력히 압박할 것”이라며 “2016년 사드 배치 때보다 수십 배 강한 경제 보복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 번째 문제는 북한이다. 란코프 교수는 “한국은 비밀 유지가 어려운 사회이며 핵개발이 시작되면 북한이 선제공격을 감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핵무기를 확보하기까지 최소 3~4년이 소요되는 ‘공백기’가 가장 큰 리스크라는 것이다.

하지만 란코프 교수는 “핵개발은 결코 값싸거나 쉬운 길이 아니며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타격도 따를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는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안보 제공과 평화적 환경에 너무 익숙해져 왔다”며 “북한은 이미 1980년대부터 남한을 군사적으로 이길 수 없는 구조였지만 핵무기가 억제용을 넘어 실전 위협이 될 경우 대응 전략도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러 경제협력은 80 ~ 90% 수준까지 회복 가능 ... 러시아 경제 중국에 의존 

란코프 교수는 러-우 전쟁이 끝나면 한국과 러시아 간의 경제 협력은 80~90%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 대기업 중 일부는 대외적으로 제재를 지키고 있지만 여전히 비공식적으로 러시아와 거래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이 이뤄질 경우 양국 간 경제관계는 빠르게 복원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정치외교 관계는 2020년 이전 수준으로 완전 복원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는 한국을 대부분의 서방국가와 달리 덜 적대적인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구조에 놓여 있는 한 정치적으로 러시아와의 밀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란코프 교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경제 제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GDP 성장과 실질소득이 유지된 이유는 전적으로 중국에 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은 러시아산 석유·천연가스의 최대 수입처이며 중개무역을 통해 제재 회피의 창구 역할도 해주고 있다”며 “지금 러시아 입장에서 중국은 유일한 생존 파트너”라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러시아는 반대로 중국 외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중국이 원한다면 중동이나 남미에서 석유를 조달할 수 있지만 러시아는 그렇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최근 러시아와의 정치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북한은 국제시장에서 팔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제품이 거의 없다. 사실상 노동력 외엔 무역 자원이 없다”며 “러시아와의 교류는 군수물자 거래와 파병 대가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행사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 “수많은 약소국 지도자 가운데 하나로 취급되는 다자회의에 서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며 “푸틴과의 평등한 정상 외교만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란코프 교수는 김정은이 김일성 시대의 중소(中蘇) 등거리 외교를 모방하려는 것은 “완전히 현실을 오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소련과 중국이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비대칭적인 준동맹 관계로 러시아는 중국의 전략을 거스를 수 없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러시아를 선호한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러시아 역시 북한보다 훨씬 더 중요한 파트너는 중국"이라며 "김정은의 시계추 외교는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외교정책은 선택지가 많지 않으며, 러시아를 이용한 중국 견제 역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누가 당선돼도 대북지원은 쉽지 않아…해답은 서울 아닌 워싱턴에 있다”

차기 정부에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본격적인 대북지원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 중인 가운데 한국 정부 단독으로는 북한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의미 있는 지원’을 제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만약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지지자들의 기조를 고려하면 대북지원에 대한 정치적 의지는 분명 존재하지만 국제 제재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정책적 운신의 폭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 입장에서 가치 있는 물자나 설비를 지원하려면 제재를 위반하게 되고 이는 어떤 진보 정부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서울이 아니라 워싱턴에서 해답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란코프 교수는 미국 내 정치지형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가기관을 신뢰하지 않고 백악관 시스템조차 대거 손질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외교 문제에선 여전히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며 “외교관들과 워싱턴의 관찰자들 사이에서도 트럼프가 2019년 하노이 회담에서 미완의 거래를 마무리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수용한다면 미국도 제한적이나마 제재 완화에 나설 수 있다”며  “이런 구조 속에서만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가 대북정책을 주도하려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의 입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정은, 더 이상 트럼프와 회담 절박하지 않다…2019년과 달라진 구조

북한의 대외 환경 변화도 주목할 요소로 평가된다. 란코프 교수는 “2019년 당시 북한은 국제 제재로 비상자금조차 바닥난 상태였지만 지금은 러시아와 중국을 통한 우회적 지원이 지속되고 있다”며 “전투노동력과 건설 인력을 통한 외화 확보가 증가하면서 과거처럼 급박한 협상에 나설 유인이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여전히 미국과의 타협을 선호하지만 지금은 그 절박함의 강도가 훨씬 약해진 상황”이라며 “따라서 향후 북미 간 스몰딜은 가능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빠른 전개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주애, 후계자 되긴 어렵지만 가능성은 있다… 김정은은 패미니스트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딸 김주애가 향후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낮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전망했다. 북한 사회 내부의 가부장적 질서가 변화하고 있으며 김정은 본인의 여성관도 과거와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가능성의 문은 열려 있다는 것이 란코프 교수의 평가다. 

란코프 교수는 “김주애가 후계자가 되는 일은 북한이라는 특수 체제 안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겠지만 김정은의 성격과 가치관에 따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라며 "김정은이 사실상 ‘페미니스트’적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여성 간부들이 지금은 고위층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김여정, 최선희, 현송월 모두가 그런 사례”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정은은 도당·군당 지도원 가운데 여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라며 “과거 김정일이 여동생 김경희보다 남편 장성택을 택했던 것과는 다른 여성관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주애가 이미 만 12~13세에 군수공업 현장, 미사일 발사대, 인민군 훈련장을 잇따라 방문하며 공식 노출 빈도를 늘리는 것에 대해 “이러한 등장은 정치 엘리트들에게 여성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치밀한 연출”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주애가 어릴 때부터 군 관련 시설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후계자로서의 상징성과 준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며 “여성이라는 점에서 도전이 있겠지만 이미 북한 사회는 그런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의 성 역할 변화도 김주애 후계자론에 힘을 싣는 배경으로 거론된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에서 실제 돈을 벌고 가정을 꾸려가는 사람은 여성”이라며 “30년 넘게 장마당과 시장경제 속에서 여성들이 실질적인 경제 주체로 올라서며 가부장제가 약화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은 간부가 아닌 이상 출근은 해도 배급이 끊기고 일거리가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지만 아내는 시장에서 장사하거나 민간 기업에 취업해 실제로 가정 경제를 이끈다”며 “이런 구조 변화가 사회 전반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후계 구도를 둘러싼 내부 충돌 가능성에 대해선 “북한 엘리트 계층은 체제가 무너지면 본인들도 함께 무너질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야심 있는 군인이 쿠데타를 일으켜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구조적 현실이 북한을 지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란코프 교수는 “엘리트들은 결국 위에서 내려오는 지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김주애든 누구든 후계자가 정해지면 그것이 체제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이라며 “지도자가 없다는 혼란보다 여성이든 후계자가 있다는 안정이 더 낫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는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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